생각하며 살아가며

작성자 이요나(admin) 시간 2020-05-30 17:08:21 조회수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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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이해 충돌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유대인들이 안디옥 교회에 들어와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주장을 하게 되자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진리를 터득한 안디옥 성도들에 사이에 커다란 파장이 일어났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라도 유대인들의 교리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들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증거를 무시해 버리기에는 합당한 복음의 변증이 있어야 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복음의 근원지인 예루살렘의 교회로 가서 사도회의의 결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를 위시한 안디옥 교회의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안디옥에서 발생한 교리적 논쟁에 대하여 변론하니 그들 중에 함께 한 바리새파 중의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논거하였다.

 

여기서 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는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의 성도가 되었는데 사도들과 다른 논리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오랜 세월 모세의 율법적 교리를 구원의 원리로 알고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만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율법과 복음을 함께 갖고 싶었던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7-10) 증거 하였다.

 

베드로는 여기서 너희가 도대체 누구냐?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누구를 선택하였느냐? 물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께서 택하신 제자들을 사도로 세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누구에게 맡기셨느냐는 베드로의 질문 앞 그 누구도 나설 수 없었다.

 

베드로는 계속하여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셨다 증거하였다. 이미 이것은 사마리아와 안디옥, 이탈리아 영지에서 나타난 증거인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지 않았다면 이방인 가운데 놀라운 복음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확증하였다. 여기서 베드로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속한 것임을 증거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이 이교적 풍습과 생활방법이 비율법적인 이방인들과 동등한 성도로서 함께 멍에를 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동성애, 성중독, 마약 중독자들을 받아 드릴 수 없는 교회의 풍조와 같은 맥락이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주의 형제 야고보가 일어나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19-21) 권고하였다.

 

이는 유대인들은 거룩한 율법적 생활에 익숙하였지만, 이방인들은 육체의 속성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생명의 근원인 피를 중요시 하지 않으며 음행을 일삼아 왔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이러한 비성경적인 행위를 끊어내고 복음생활을 하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요나 목사)